사람이 많은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처럼 답답한 곳에서 갑자기 불안해지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넓은 광장이나 주차장을 걸을 때 오히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지러우면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형 주차장 한가운데를 혼자 걷다가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고 다리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주변이 탁 트여 답답할 이유가 없는데도 멀리 보이는 건물까지 걸어갈 생각을 하면 불안해지고, 다시 차로 돌아가야 마음이 놓입니다.
넓은 쇼핑몰이나 광장, 다리를 건널 때 비슷한 증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후에는 혼자 가는 것을 피하고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만 움직이거나, 넓은 공간을 가로지르지 않고 벽이나 건물 가까이로 걷는 식으로 행동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이런 증상을 단순히 ‘넓은 곳이 무서운 것’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공황장애와 함께 나타날 수 있는 광장공포증에서는 공간 자체보다 그곳에서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바로 빠져나갈 수 있는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불안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넓은 공간인데 왜 답답한 곳처럼 불안해질까?
광장공포증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넓은 광장을 무서워하는 질환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두려움을 느끼는 장소는 상당히 다양합니다.
버스나 지하철처럼 중간에 마음대로 내리기 어려운 곳, 영화관이나 엘리베이터 같은 밀폐된 공간뿐 아니라 넓은 주차장이나 광장, 다리처럼 탁 트인 공간에서도 불안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서로 정반대처럼 보이는 장소인데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여기서 갑자기 어지러워지면 어떡하지?’, ‘심장이 이렇게 뛰다가 쓰러지면 누가 도와주지?’, ‘저기까지 걸어가다가 공황이 오면 바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이 들면서 쉽게 빠져나가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과거 비슷한 장소에서 공황발작을 경험했다면 이런 연결이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가빠지면서 어지러움을 느꼈던 경험이 강하게 남으면, 다음에 같은 장소에 갔을 때 실제 공황발작이 시작되기 전부터 몸의 변화를 확인하게 됩니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정도의 심장 박동이나 순간적인 어지러움에도 민감해지고, ‘또 시작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불안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불안 때문에 심장이 더 빨리 뛰고 호흡이 빨라지면 그 신체 변화가 다시 공포를 키우면서 공황 증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먼저 공황발작을 경험한 뒤 광장공포증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공황장애 없이 광장공포증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넓은 공간에서 불안하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공황장애라고 단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피하면 편해지는데 왜 점점 갈 수 있는 곳이 줄어들까?
넓은 주차장에서 한 번 심한 공황을 경험했다면 다음에는 같은 장소를 피하고 싶어지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처음에는 넓은 주차장만 피했는데 어느 순간 대형마트에 혼자 가지 못하고, 그다음에는 지하철이나 버스도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멀리 외출할 때 반드시 가족과 함께 가거나 출구와 가까운 자리를 찾는 식으로 생활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회피하면 당장은 편해집니다. 불안해질 장소에 가지 않았으니 공황도 경험하지 않게 됩니다.
문제는 이 경험이 반복되면서 ‘피했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받아들이기 쉽다는 것입니다. 혼자 넓은 공간에 있어도 결국 불안이 가라앉을 수 있다는 경험을 할 기회는 줄어들고, 다음에는 같은 장소가 더 위험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벽 가까이로만 걷거나 항상 물이나 특정 물건을 가지고 있어야 움직일 수 있고, 반드시 누군가와 동행하는 것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행동이 무조건 잘못됐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것이 없으면 밖에 나갈 수 없다고 느낄 정도가 된다면 불안을 유지시키는 행동으로 자리 잡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광장공포증 치료에서 회피하고 있는 장소를 조금씩 다시 경험하도록 돕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심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에게 무조건 혼자 넓은 광장 한가운데로 나가 버티라고 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비교적 불안이 적은 상황부터 시작해 점차 범위를 넓히면서, 불안한 느낌이 생겨도 실제로 위험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시간이 지나면 불안도 낮아질 수 있다는 경험을 쌓아가는 방식이 사용됩니다.

갑자기 공황이 올라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넓은 공간을 걷다가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그 장소에서 도망치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려고 반복하다 보면 오히려 호흡이 빨라지고 어지러움이나 손발 저림이 심해져 ‘정말 쓰러지는 것 같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공황 증상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주변이 안전한 상황이라면 호흡을 급하게 크게 하려고 하기보다 천천히 호흡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구체적인 대상에 시선을 두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불안이 올라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심장 두근거림이나 떨림, 열감 같은 신체 반응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공황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반응이라는 점을 떠올리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다만 처음 경험하는 심한 가슴통증이나 실신, 심한 호흡곤란처럼 다른 질환과 구분하기 어려운 증상을 무조건 공황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기존에 심장질환이 있거나 평소와 전혀 다른 양상의 증상이 나타났다면 필요한 의학적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공황이 지나간 뒤의 행동도 중요합니다.
‘오늘 여기서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해 그 장소를 완전히 피하기 시작하면 다음 방문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공황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다음 날 혼자 같은 상황을 견뎌내려고 무리할 필요도 없습니다.
불안 때문에 갈 수 있는 장소가 점점 줄어들거나 외출할 때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해야 하고, 대중교통이나 넓은 공간을 피하느라 일상생활까지 달라지고 있다면 혼자 버티는 문제로 보기보다 치료를 고려할 시점에 가깝습니다.
넓은 공간을 다시 편하게 다니는 것이 치료의 목표다
광장공포증이나 공황장애 치료에서는 인지행동치료가 많이 사용되며, 그 과정에서 피하고 있던 상황을 단계적으로 경험하는 노출치료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넓은 공간을 혼자 걷는 것이 어렵다면 처음부터 큰 광장을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편한 장소에서 짧은 거리를 걷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익숙해지면 거리를 조금 늘리고, 이후에는 사람이 적은 넓은 공간을 걸어보는 식으로 단계를 조절합니다.
목표는 공황을 절대로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안이나 두근거림이 조금 생기더라도 ‘이 느낌 때문에 반드시 쓰러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당장 도망가지 않아도 결국 가라앉을 수 있다’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불안과 장소 사이에 만들어진 연결을 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증상의 정도에 따라 약물치료를 함께 사용하기도 합니다.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는 공황발작의 빈도와 광장공포증의 정도,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판단할 수 있습니다.
특히 피하는 장소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면 ‘아직 혼자 참을 수 있으니 괜찮다’는 것만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혼자 외출하지 못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단계까지 진행된 뒤에야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질환은 아닙니다.
탁 트인 공간에서 불안해지는 사람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넓은 공간 자체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공황이 왔을 때 벗어날 수 없거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공간을 위험하게 느끼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처의 방향도 넓은 장소를 계속 피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불안이 생기는 상황과 그때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치료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다시 경험하면서 ‘이곳에 있어도 괜찮다’는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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